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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공부

국가 수준 교육과정과 교과서

국가 주도 공교육 제도가 생겨 교육이 나라의 일이 되면서, 개인적 필요를 따르던 공부가 국가 시책에 매이게 된다. 그리고 공부라는 말에는 곧장 학교와 교과서가 연상된다. 대표적인 공부 장소가 학교이고 공부 대상의 상징이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공부할 것들을 체계적으로 모아 담은 것이 교과서다. 권위로 치면 한국의 교과서만큼 대접받는 교과서도 없을 것이다. 내용보다 공부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특히 그렇다. 집필 과정의 검증도 여느 나라보다 치밀하다. 오류가 있을 시 사회적 파장도 적지 않다. 정답을 고르는 입시에서 교과서는 정오正誤를 가리는 절대 기준이다. 한국 입시의 압도적 비중 때문에 한국에서는 문항의 출전인 교과서가 거의 경전의 지위를 갖고 있다.

 

교과서의 권위와 한계

 

교과서 편성의 기준이 되는 교육과정은 사계斯界의 권위자들이 다년간 다양한 검증을 거쳐서 짠다. 당대의 학문과 지적 자원의 총화이자 정수(essence)로 여겨진다. 그 교육과정에 기반해 수업 교재로 만든 것이 교과서다. 인류 문화유산의 진수와 학문들의 정설, 시대적 요구와 지향까지 담아낸 경전으로, 학생들의 책상 앞자리에 꽂힐 만하다.

 

교과서의 권위가 이 정도면, 교과서 파고들기가 수험전략의 기본이요 공부의 왕도로 여겨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 한계는 교과서형 지식의 진부함과 교과서 달인(학교 교육의 우등생)의 고지식함 등이 조롱받으면서 드러나고 말았다.

 

그래서, 교과서공부하는 교육을 넘어, 교과서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대두되었다. 교과서가 공부의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유일한 도구가 아니라 많은 도구들 중 하나이며, ‘그중 하나(one of them)가 아닌, ‘상대적으로 나은(better than them)도구라는 정도가, 교과서의 새로운 위상이 되었다.

 

교육과정의 힘과 한계

 

한국의 교과서는 정부가 대개 5년 주기로 개정하는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따라 개편된다. 대한민국 공교육 과정의 기저에는 미국의 교육 사조가 자리한다. 고전적인 교과중심 교육과정체계를 근간으로, ‘학문중심 교육과정체계도 가미된다. 교육내용은 각 교과 공히 지식을 중시해, 인류가 쌓아온 핵심 지적 자산을 주된 콘텐츠로 삼는다.

 

교과중심 교육과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형적(전통적)인 커리큘럼이다. 교육 목적을 선현들의 문화유산을 전수하는 데 두고, 그것을 체계화한 교과가 수업 단위가 된다. 오랜 세월 검증된 진리가 교육내용이라, 그대로 전수하는 것이 학생들의 주된 공부 패턴이다.

 

교과중심 교육과정은 누가 체계화하거나 제도화한 것도 아니지만, 그 힘이 강력하고 유구하다. 교수-학습 방식이 단순하면서 전달 효과가 높아서다. 다량의 지식을 빨리 습득하는 데 효율적이어서, 교수-학습자 모두가 선호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해방 후 미군정에 의한 경험주의 교육관 도입 전까지 일제 강점기의 식민교육이 주로 교과중심 교육과정이어서, 초중고는 물론 대학 과정에까지 지배적인 커리큘럼이 되었다.

 

교육과정뿐 아니라 교과서의 한계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교육이란 일차적으로 교과서를 중심으로 교수-학습하는 일이다. 다만, 교과서는 당대의 주류 학설이나 사회적 통념을 담은 지적 풍속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교과서 위주 공부의 한계는, 그 내용들이 최종적 권위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집필자부터 당대 최고 수준의 전문가라기보다, 공인된 지식을 재정리하는 수준의 관련자들이 참여하기가 쉽다. 검토 과정에서도 행정집행권을 가진 관료나 관련 네트워크가 주도적으로 관여한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사회의 주도권을 가진 정파나 권력 단위의 개입이다. 특히, 집권 세력과 관련 학술단체가 깊이 관여해, 교과서는 그들의 감독과 검열을 거쳐 발행된다. 이렇게 편찬된 교과서에 매몰될 경우, 그것에 반영된 사회의 규범과 행동 양식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사고방식까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요컨대, 교과서를 떼는것은 공부의 시작일 뿐,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 공부의 본령은 교과서 너머에 있다. 교과서를 무오류의 경전으로 여기는 맹신을 떨쳐내는 지점에서, 공부의 주체가 주도하는 진정한 탐구 여정이 시작된다.